마태복음 27-28장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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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마태복음 27-28장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by 소북소북 2021. 3. 22.

2021.03.22 - [분류 전체보기] - 마태복음 26장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마태복음 27장

빌라도에게 넘겨지심(27:1-2)

유다의 죽음(27:3-10)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심(27:11-14)

그때 당시 공회는 사형과 관련된 재판권은 없었던 듯하다. 사형 재판은 빌라도, 총독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굳이 총독에게 가서 재판이 진행된다. 11a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빌라도에게는 유대인의 왕 죄목으로 고소되었다. 빌라도에게는 정치적 의미 <유대인의 왕>으로 고소한 것이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이 질문에 대해 <당신이 말하고 있소> 유보적, 긍정적 답변을 하고 계신다. 틀리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여전히 아무 대답도 안 하신다. 변명하지 않으신다.

 

14절 한마디도 안 하시니 총독이 놀랍게 여겼다. 자기 방어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예수님이 언제나 그러지 않으셨지만 죽음의 길로 가는 길에서 한 마디 변명, 자기 방어하지 않으신다. 그 결과 15-26절 사형 선고 내려짐

사형 선고를 받으심(27:15-26)

<17절> 많은 심문에도 불구하고 로마법에 거해서는 예수님을 죽일 근거 찾지 못함. 그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여 달라고 고소한 내용가운데 예수님을 죽일 근거를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빌라도는 특별사면을 제안한다. 바라바냐, 그리스도냐. 하지만 사람들은 뭐라고 하는가? 예수를 넘겨준 줄 알았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했고.


<19-20절> h` gunh. auvtou/, ‘그의 아내’ 마태복음에만 있는 그의 아내의 이야기. 이방 여인과 유대인 지도자들, 그 백성들 사이의 대조를 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지도자들과 자신들의 메시아를 죽이려고 하는데 한 이방 여인은 예수님의 무죄함을 꿈을 통해 알게 되고 그의 죽음을 막고자 하는 대조.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자기들만의 힘으로 안 되니까 선동재판, 선동정치를 한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빌라도는 예수를 죽이지 않을 수 없음을 직관한 것 같다. 그는 책임지고 싶지는 않았다. 24a.

 

<24절> labw.n u [dwr avpeni, yato ta.j cei/raj avpe, nanti tou/ o;clou,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손을 씻었다.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고 있다. 빌라도는 이 인상적인 행동에 이어서 자신의 결백을 확고하게 선언한다. avqw/|o, j eivmi avpo. tou/ ai [matoj tou, tou\ u`mei/j o;yesqe,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으니,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오.’ 빌라도의 이 심각한 선언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답한다.

 

<25절>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시오.’ 참조. 21:33-46; 23:34-36, 38; 24:2
이방인 총독은 무죄한 자의 피를 돌리는데 소극적인데,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적극적인 것이 참으로 역설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빌라도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그 피의 책임을 자신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자손들에게까지 돌리는 것은 충격적이다. 그 결과 그들의 집이 황폐해질 것이라는 것은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로 성취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특권, 하나님 나라의 소유권을 이스라엘은 상실하게 된다. 마태복음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내용들을 정리해보자.

 

빌라도의 아내의 충고, 결백 선언, 백성들이 자기를 저주하는 내용은 마태에만 나타난다. 마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백성의 특권을 상실함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아니라, 예수님을 죽이기까지에 다다르는 그들의 적대적 태도의 결과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십자가 죽음(27:27-56)

군인들이 조롱함(27:27-31)

십자가에 못 박히심(27:32-44)

마태는 이 사건을 기술해 나가는 과정에서 주요한 기독론적 호칭들을 연이어 언급한다: ‘유대인의 왕’(37절), ‘성전 건축자’(40절), ‘하나님의 아들’(40절), ‘이스라엘의 왕’(42절), ‘하나님의 아들’(43절).
물론 이런 호칭들은 긍정적 의미보다 조롱의 상황에서 주어진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메시아의 신분으로 자신의 길을 가셨다. 그런데 3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처형당하시는 현장을 지나가던 자들이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준다.

 

<39-40절>‘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네 자신을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참조. 4:3, 6; 26:53
이 제안 어디서 들어보지 않았는가? 예수님의 시험, 사탄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사실 예수님은 그들이 제안한 대로 십자가에서 내려 올 능력이 있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제자라는 이유 때문에 억울한 상황들이 많다. 그럴 때 답답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상황을 염두에 두면 순종하기 더 쉽지 않을까? 예수님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이미 결정하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이시기에 오히려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다. 세속적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은 이처럼 다르다.

 

<41-43절> oi` avrcierei/j... meta. tw/n grammate, wn kai. presbute, rwn,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모욕하는 최종적 모습 철저히 모욕하고 거절하는 상황. 예외가 없다. 그 정도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메시아를 거역하는 모습이었다.

 

 

예수님의 죽음(27:45-56)

마태는 이 시점에서 예수님의 처형과 관련된 시간을 최초로 언급한다. 6시부터 하루가 시작되기 때문에 9시는 오후 3시.
구약에서 대 낮에 해가 져서 깜깜해지는 것은 엄청난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다. 죽음에 직면하신 예수님께서 큰소리로 부르짖으신다.
<45절> VApo. de. e[kthj w [raj sko, toj evge, neto evpi. pa/san th.n gh/n e [wj w [raj evna, thj, ‘제육 시부터 어두움이 온 땅에 엄습하여, 제구 시까지 계속되었다.’ 참조. 암 8:9; 욜 2:2, 31; 습 1:15

 

<46절>hli hli lema sabacqaniÈ 참조. 20:28; 26:36-46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안에서는 십자가 상안에서 말씀하신 유일한 내용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예수님의 고통은 단지 육체적 고통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버림 당하신 것에서 기인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마땅한 많은 이들의 대속물로서 하나님께 대신 버림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 잔을 마시기 위해서 겟세마네에서 세 번씩이나 동일하게 기도를 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림받음은 이처럼 힘든 일이기에 그처럼 간절한 기도로 철저하게 준비하셨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막상 그 일에 직면 새서는 고뇌에 찬 모습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그 극심한 고통을 극복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게 한다.


<50절> pa, lin kra, xaj fwnh/| mega, lh| avfh/ken to. pneu/ma, ‘다시 큰 소리로 부르짖으시고 나서, 그 영을 내어놓으셨다.’
예수님의 의지적 모습 강조. 스스로 하나님께 내어놓으시는 예수님. 중요한 한 현상이 여기에 있다

 

<51절> to. katape, tasma tou/ naou/ evsci, sqh avpV a;nwqen e [wj ka, tw eivj du, o,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둘로 찢어졌다.’ 참조. 히 6:19; 9:3; 10:19-20
예수님의 죽음과 더불어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이 찢어짐을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심판으로 성전 자체가 무너질 것을 이미 예언하셨는데, 70년에 성취. 그 사건을 휘장이 찢어지는 것으로 보는 기능으로 내다본다.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휘장이 이제는 열렸다는 것이다. 더 이상 가로막지 못한다. 그 휘장은 예수님의 육체다. 예수님의 찢기심과 더불어 지성소를 가로막던 휘장이 찢기고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고 예배드리게 된 것이다.

 

<54절> avlhqw/j qeou/ ui`o.j h=n ou-toj, ‘이분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 참조. 14:33; 16:16
지진과 그 일어난 일을 보고 심히 두려워 이르되... 이방인의 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구경꾼들은 조롱한 것에 비해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 인정, 고백하고 있다. 참으로 대조적이다. 이는 아마도 이스라엘의 본 자손들이 동서에서 몰려오는 이방인들에 의해 대체될 많은 예언들.

마 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마 8: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예수님의 죽음 이야기는 추가 증인들에 의해 마무리된다. 목록에 있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모두 다 여인들이다. 정작 십자가의 죽음 아래서는 증인들은 모두 다 여자들이었다. 마태복음에서 열한 제자 갈릴리에서 등장한다. 예수님의 죽음, 장사, 부활의 직접적 증인들은 여인들밖에 없었다. 그들은 전통상 증인들로 간주되지 않은 신분의 사람들인데, 자칫 공백으론 남을 수 있는 현장의 증인들이 되었다.

 

<55-56절> gunai/kej pollai,, ‘많은 여인들’ 참조. 27:61; 28:1-10

 

장사(葬事)와 부활(27:57-28:20)

A. 27:57-61 요셉의 장사(葬事)와 여인들
     B. 27:62-66 경비병들이 무덤을 지킴
A'. 28:1-10 살아나신 예수님과 여인들
     B'. 28:11-15 빈 무덤에 대한 경비병들의 보고와 거짓 증언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27:57-61)

경비병들이 무덤을 지킴(27:62-66)

예수님께서 부활하심(28:1-10)

부활로 말미암아 생겨난 두 가지 결과들: 1) 빈 무덤; 2) 부활하신 주님.

 

경비병들을 매수함(28:11-15)

 

부활하신 주님의 왕권과 명령(28:16-20)


복음서 처음 두 장에서 내다봤던 것이 구체적 현실로 귀결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으로 시사되었던 1:17이 우주적 왕으로 등극하는 모습, 온 우주의 왕. 둘째로 1:23 임마누엘이라는 예언 성취하는 분으로 묘사, 여기서 실제로 제자들과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영원한 성취.

17a 예수를 만난 제자들이 그 분께 경배.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몇몇은 의심하고 있다. 이처럼 의심하며 망설이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친히 다가가신다.

 

<18절> evdo, qh moi pa/sa evxousi, a evn ouvranw/| kai. evpi. Îth/jÐ gh/j,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나에게 주어졌다.’ 참조. 4:8-9; 26:64; 단 7:14; 빌 2:6-11 예수님께서 아까 대제사장에게 심문받으실 때 자신이 받으실 영광 예고가 부활을 통해 성취됨을 확인할 수 있다. 우주적 통치권을 성취하신 예수님은 그 구체적 행사 위하여 우주적 선교를 명하신다.

 

 

<19-20절> maqhteu, sate pa, nta ta. e;qnh,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만들어라.’ 참조. 10:5-6; 또한 참조. 8:11-12; 21:28-32, 41-43; 22:8-10 등 부활하신 예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만을 위한 메시아가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메시아이다. 따라서 제자들의 선교 범위도 이스라엘의 한계 범위를 넘어서 온 세상으로 넓혀져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선교가 온 세상이 될 것임을 예수님은 예언해 오셨는데 이제 당신의 부활과 함께 제자들에 의해 성취될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 모든 민족들을 제자 삼아라. 제자를 만드는 것은 선교의 중심이 예수님과의 관계에 맞춰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들어라.

 

bapti, zontej auvtou.j eivj to. o;noma tou/ patro.j kai. tou/ ui ou/ kai. tou/ a gi, ou pneu, matoj, ‘그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세례는 아버지, 아들, 성령의 관계로 들어가는 시발적 사건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런데 제자를 만드는 가르침은 마태 안에서 예수님만 수행하던 고유한 영역이었다. 고치라, 기적 행하라는 명령은 있었지만. 이제 주님은 가르치라고 명령하신다. 제자들의 가르침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dida, skontej auvtou.j threi/n pa, nta o [sa evneteila, mhn u`mi/n,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그들을 가르쳐라.’ 참조. 7:24-27; 10:1, 8
명령한 모든 것을 지켜 행하라고 하신다. 제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세례 주는 모든 사람들이 지켜 행해야. evgw. meqV u mw/n eivmi pa, saj ta. j h me,raj e [wj th/j suntelei, aj tou/ aivw/noj,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다.’ 참조. 1:23; 18:20; 사 7:14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신다는 선언은 예수님의 출생과 관련된 성취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임마누엘 사상으로 감싸있는 인쿨루지오 구조이다. 그래서 예수님 자신이 임마누엘 예언을 궁극적으로 성취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예언이 예수님에 의해 성취되는 것으로 복음서가 마무리된다.

 

마태는 이 것을 자신의 복음서 마지막에 위치함으로 앞으로 다가올 모든 세대의 교회들이 예수님의 임재를 누리게 될 것과 하나님과의 직접적 교제를 누림을 약속해 주고 있고, 이 약속은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기쁨과 특권을 누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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