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장18-38 세 쌍 기적 이야기
본 장의 기적들은 앞서 8,9장에서 여섯 단락에서 소개되었던 기적들과 더불어서 11:5절의 예수님의 사역을 특징짓는 기술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메시아에게 기대되었던 특징적인 사역이었다. 마태는 11:5 이후에 일어났을 기적들도 미리 끌어 8,9장에 위치해서 독자들이 확인하게 하고 있다. 8,9장의 나열된 기적들은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적 사역으로 예언의 성취적 의미가 있다.
두 여자의 문제를 해결하심(9:18-26)
기적 이야기가 세 복음서에서 마가복음에서 제일 길게, 마태복음에서 제일 짧게 나타난다. 마태의 이야기는 이러한 간결성 외에 마가의 이야기와 몇 가지 중요한 차이를 보인다. 마가는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을 ‘회당장 야이로’ 라고 기술하고 마태는 ‘한 관리’라고 기술한다. 이런 차이를 우리는 샌드위치 구조로 이해할 수 있는데, 딸을 살려달라는 관리의 요청과 혈루증 여인을 치유한 이야기, 이 둘 사이의 몇 가지의 공통점이 또한 있다.
그것은 첫째, 여자와 관련된 기적이라는 것, 둘째, 둘 다 부정한 여인과 관련되었다는 것, 셋째, 부정한 자를 모두 만지는 행동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또한 결과로 그 부정함이 해결되는 기적이다.
딸을 살려달라는 관리의 요청(9:18-19)
18절 마태의 기술은 죽어가는 자신의 딸을 치유해달라는 마가나 누가의 평행 기술보다 관리의 믿음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딸에게 손을 얹어달라는 관리의 요청은 신체와의 접촉을 금지하는 유대인의 규례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방인은 예수님이 정결 규례를 어기지 않도록 배려하는데, 회당장은 와서 손을 얹어달라고, 오히려 절박함을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은 정결함에 영향을 미치는 자이다. 부정한 자를 만졌지만, 상대방을 정결케 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그러한 믿음이 있었을 수도 있다. 손을 얹어달라는 요청은 여기가 유일하다. 마태가 더 관리의 믿음을 부각하고 있다.
19절 예수님의 반응은, 말씀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마태는 예수님과 함께 제자들도 따라감을 기술한다. 마가, 누가에는 없는 내용이다. 그 말은 마태는 이 문제를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혈루증 여인 치유(9:20-22)
20절 피를 흘린다는 것은 부정함을 의미하는 것이고, 정결 규례에 해당하는 것이다. 유대인 사회에서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이 찍힌 여자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 오랜 병을 치유받기 위해 나아온다. 딸 때문에 절박한 관리의 모습이나, 이 여인이나 절박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자신의 사회적 제약 때문에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다. 그러한 행동은 어쨌든 정결 규례에 어긋난다. 부정해질 줄 알면서도 옷자락을 만지는 것이나 관리의 요청이나, 내가 이 걸 만지면 내 부정함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정결함으로 정결케 되겠다는 믿음이 있었을 수도 있다.
21절 마태는 옷자락만 만져도 낫는 것을 오해하는 것을 경계하고, 마가나 누가와는 달리, 옷자락을 만지자마자 나았다라고 하지 않고, 치유 발생이, 예수님의 치유 선언과 같이 일어남을 말하고 있다.
22절 모든 걸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부각한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행동이 정결 규례를 깨뜨리는 것이다 라고 책망하지 않으신다. ‘ 딸’이라고 부르심으로 오히려 여인을 따듯하게 격려하신다. 예수님은 여인의 신뢰를 믿음이라고 인정하시고, 그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다고 표현하신다. 혈루증을 치유함으로 그녀의 진정한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원하신 것이다.
‘구원받았다’는 말은 ‘치유받았다’라는 말보다 더 깊이 있는 선언이다. 초대교회에서 이 표현은 아주 정형화되어 있던 표현으로써 독자들이 읽었을 때, 육체적 문제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구원받았음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관리의 딸을 살리심(9:23-26)
23절 장례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이 곳에 오심으로 상황이 달라진다. ‘물러가라’고 명령하신다.
24절 소녀의 아버지나 애곡한 자들이 관찰한 것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소녀의 육체적 죽음을 예수님은 인정하시고, 그 죽음의 의미는 재해석하고 계신다. 소녀의 죽음이 잠을 자는 것과 유사한 공통점이 있음을 해석하고 계시는 걸로 보인다. 잠을 자는 것이 깨어남과 같이, 이 소녀도 영원히 죽어있는 상태로 있을 것이 아니다. 끝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 부활하겠지만, 예수님의 기적에 의해 곧 살아날 것임을 내다보게 하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25절 마가는 예수께서 그 소녀를 살리실 때 ‘달리다굼’ 이란 아람어를 소개한 반면, 마태는 소개하지 않는다. 마태는 마술적 요소를 최대한 방지, 배제하는 것이다. 한편 마태는 예수께서 부정한 시체의 손을 만지신 것과 정결 규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마태는 이미 앞에서 부정한 자를 만져서 치유하심에 대해 말해 왔다. 마태는 예수께서 부정한 자들과 음식 교제한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음을 기술했다.
따라서 마태는 아무리 유대인 독자들이라 할지라도 정결 규례를 언급할 필요 느끼지 못한 듯하다. 부정한 자를 접촉하실 때마다, 그의 권위와 능력이 부정한 자의 부정을 제외하지,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이 마태의 분명한 확신이다.
두 맹인을 치유하심(9:27-31)
27절 두 맹인이 관리의 딸을 살리고 갈 때 따라붙는다. 그들이 외쳐 예수님을 부른다. 구약 시대 이후로 맹인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자로 간주되었다. 저주의 내용 가운데 맹인이 나온다. 맹인들은 마태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첫 번째 경우이다. 이 호칭은 마태가 복음서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메시아를 부른 호칭이었다.
그런데 이 호칭을 예수님의 치유 기적과 함께 자주 사용하는 것을 주목할 수 있다. 치유를 기대하는 유대인들이라면 메시아라고 부르는데 메시아의 친숙한 표현은 ‘다윗의 자손’이다. 그들은 이 외침을 통해서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8절 예수님께서 당신의 치유 능력 여부에 대해 탄원자에게 질문을 던지신 경우는 여기가 유일하다. 치유의 능력과 믿음을 긴밀하게 연결시킨다. 예수님의 질문은 치유에 있어 믿음의 중요성을 청중들이, 독자들이 깊이 깨달아야 함을 교육하고 계신다.
‘믿음을 보시고’ 믿음의 공동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한 사람의 치유를 위해 우리가 함께 기도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사람의 문제를 가지고 공동체가 함께 믿음으로 기도할 때 그 기도의 결과가 나타난다. 우리의 믿음은 공동체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29절 기적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진다. 마태는 오해하지 않도록 만지고, 그 다음에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한다.
30절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의미로 기적을 행하는 것이지, 자신의 신분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전도나, 능력 과시용으로 기적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치유 기적의 목적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통치의 결과였다. 메시아의 현존 가운데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사건이었다.
벙어리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심(9:32-34)
33절 귀신들림이 언제나 육체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나, 때로는 육체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마태는 ‘치유되었다’라고 말하지 않고, ‘귀신이 쫓겨나갔다’라고 표현한다. 마태는 귀신 축출의 결과 벙어리가 말하게 됨을 곧바로 기술한다. 이로써 마태는 벙어리의 원인이 귀신이었다는 점과 원인 제거 후 치유됨을 보여준다. 기적을 보고 무리들이 놀라는데, 예수님과 같은 기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열 개의 기적 모두를 염두 해 두고, 최종적 반응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다르기 때문에’ 놀란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강력한 경쟁상대로 생각하고 있다. 예수님의 기적은 공개된 사실이었음으로 그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적대감은 점점 진전되어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논박과 책망은 점점 강해진다. 처음 단계에서는 그들의 얘기 그냥 넘기신다. 그런데 이 주장이 두 번 반복되었을 때는 그 문제의 근원을 분명하게 밝히신다. 하나님의 도래 사실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셋째 마무리 단락(9:35-38)
기적과 관련된 모든 단락을 마무리하고 있다. 35-38은 5장부터 9장을 마무리하는 기능을 하면서, 10장을 연결하는 연결 고리의 기능을 한다. 예수님 혼자 감당하기는 대상이 너무 많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꾼을 보내 달라 기도하라고 요청하신다. 예수님의 선포 사역을 이어받아, 사람을 잡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추수 형태의 비유로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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