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고백(16:13-16)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누구로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하는 필요성을 느끼신 듯하다. 그러나 먼저 사람들의 여론을 물으신다.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라고 한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이해했음이 분명하다. 예수님을 선지자로 이해하고 있음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긍정적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을 이해함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입장을 직접 질문하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질문에 대해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 무리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고백했는데,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마침내 예수님이 그토록 기대했던 정답을 베드로가 말한다.
베드로에 대한 예수님의 호의적인 반응(16:17-20)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이 고백이 매우 의미심장한 의미를 포함함을 말씀하신다. 진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비밀은 너 스스로 깨닫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깨달아서 고백했지만, 거기에 대한 보상이 따른다는 것이다.
<18절> 먼저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확인해 주시고, 그런 다음에 왜 베드로인지를 밝히신다. 예수님께서 이때 시몬을 베드로라고 작명해 주신 것 같지는 않다. 이미 시몬이 베드로로 인지되고 있었다. 처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를 때 어떻게 불렀는가? 4:18 베드로라 하는 시몬. 그런데 베드로라는 이름이 어디서 주어졌을까?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이’는 앞에 있는 것을 지칭한다. 이 페트라는 앞에 있는 베드로를 지칭하는 것이다. 아람어로는 케파가 바위이다.
그러므로 베드로... 너는 바위다. 이 바위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다. 즉 교회를 베드로 위에 세우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베드로의 반석은 베드로에게만 배타적으로 적용되는 반석으로 보이진 않고 열두 사도의 대표로서 지칭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초대교회 안에 입장은 확실했고, 에베소서 2장을 보면 기초는 사도들이다(20절). 교회는 열두 사도 위에 세워진 것이다(계 21:12). 베드로와 더불어 열두 사도가 그 교회의 기초이다. 베드로의 중요한 역할은 베드로와 사도들의 공동 역할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 위에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를 세우실 것을 말씀하신다.
교회란 무엇인가?
히브리어 ‘카할’을 번역한 것이 ‘에클레시아’ 다. ‘카할’은 하나님의 회중, 공동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곧 ‘에클레시아’이다. 그것이 교회이다. 교회의 작은 단위는 두 사람이 최소 단위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에, 머리의 생명은 교회의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고, 그를 통하지 않고는 생명을 누릴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참 이스라엘, 새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붙여질 수 있다. 우리에게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면, 우리가 이스라엘이라는 의미이다.
<19절> ‘하늘 나라의 열쇠들’ 메고 푸는 권한을 언급한다. 맨다, 푼다 는 의미는 랍비들에게 있어 허용된 것과 허용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에서도 우선적으로 교회 안에 입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허용되고 안 되고의 규정에 따라, 용서하고 용서하지 않고의 의미도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매면 매어져 있을 것이요 풀면 풀려져 있을 것이다.’ 이 문장은 미래완료형으로, 그 의미는 ‘매어져 있을 것이다. 풀려져 있을 것이다.’ 교회가 멜 때 하늘에서 매어져 있는 것이 확인된다.
메는 행동은 하늘에서, 푸는 행동은 하늘에서 먼저 일어나는 것이고 교회는 그 결정을 전달하고 시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교회의 역할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메고 푸는 것은 철저하게 하늘이 먼저다. 교회는 하늘의 뜻을 잘 받들어야 한다. 그 뜻대로 결정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것 같은데, 18장에 보면 복수로 주어진다. 이 고난은 교회 공동체에게 주어진 고난이다. 즉, 토대는 열 두 사도에게 주어진 공동 고난, 메고 푸는 권한은 교회 공동체에게 주어진 권한이다.
고난 받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16:21-28)
예수님은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의 진정한 모습을 밝히신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20절)고 하신다. 그러면서 거절과 고난과 죽음이 예수님의 선교의 일부를 차지할 것이라는 충격적 사실을 말씀하신다(21절).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충격적인 선언의 의미를 바로 깨닫지 못하며, 그 결과 베드로의 부정적인 반응이 뒤따른다(22절).
베드로는 예수님의 선언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는 진리와는 너무 다른 복음 선포를 할 뻔했다. 그래서 23절에 사랑하는 제자를 사탄이라고까지 부르고 계신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가는 메시아의 길을 가로막고 하는 일은 사탄의 일이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대조를 이룬다. 사람이 죽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는 길은 그분의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과 그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것이다. 자기 부정과 자기 죽음은 하나님 나라의 기본임을 예수님께서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삶의 모든 과정의 매일매일 우리의 마음을 떠나면 안 되는 중요한 원리이다.
예수님은 끝으로 ‘인자의 오심’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신다(27절). 제자들의 선택의 심각성은 장차 올 ‘인자’의 심판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본 절에서 예견되고 있는 바는 단일한 사건보다는 오히려 부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께서 현재 최고의 권위의 지위에 계심을 인식하는 데서 발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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