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장~23장의 문맥에 비추어 24:1-35절의 논점들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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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마태복음 21장~23장의 문맥에 비추어 24:1-35절의 논점들 정리

by 소북소북 2021. 3. 15.

21장~23장의 문맥에 비추어 24:1-35절의 논점들 정리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이야기와 가르침의 단락에서 마지막 가르침 단락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이 단락은 특별히 제자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21-23장의 내용을 근거로 한 24-25장에 나타난 하나의 주제는 넓게는 심판이라 할 수 있고, 24:1-35절의 주제는 이스라엘과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예루살렘 성전파괴)으로 볼 수 있다.

 

본 과제에서는 우선 심판이라는 주제의 근거가 되는 21~23장까지의 내용을 살피고 이에 비추어 24:1-35절의 구조와 내용을 분석하여 본문의 논점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21~23장의 단락과 내용

예루살렘 입성(21:1-21: 22)

마태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도착과 입성 과정에서 세 가지 상징적인 행동을 나타낸다. 예루살렘 입성(1-11절), 성전 정화(12-17절),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이다(18-22절)

 

예수님의 세 가지 상징적 행동들 안에 중요한 메시지는 예루살렘 성전의 심판이다. 성전에 입성하는 과정에서 이 세 가지 상징적인 행동은 앞으로 전개될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과의 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충돌의 결정적인 배경을 설정한다.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과 논쟁(21:23-22:46)

예루살렘의 입성 과정과 입성에서 예수님의 세 가지 상징적인 행동은 자신의 메시야이심과 메시아로서의 권위를 잘 드러낸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신 예수님은 성전 뜰에서 대제사장들, 장로들과 권위에 대하여 논쟁하신다(23-27절). 그 후에, 두 아들의 비유(28-32절), 혼인 잔치의 비유(22:1-14절)를 통해서도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 심판당할 것을 예고하신다.

 

예수님의 이러한 비유에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하기 위해 또 질문을 던진다. 바리새인들이 먼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문제(15-22절), 사두개인들의 부활에 관한 문제(23-33절), 바리새인들 중 율법 학자들은 큰 계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34-49절)을 한다. 그러한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지혜롭게 대답하신다. 이제 반대로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인가에 대하여 질문한다(41-46절)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이 받을 화(23:1-23:39)

예수님은 먼저 무리와 제자들에게 겸손하고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신(1-12절) 후에, 23:13-36절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임할 것을 선포하신다. 예수님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당할 일곱 가지의 화,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정점은 37~39절이다. 결국 예수님의 부르심과 초대에 반응하지 않음으로 이스라엘이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을 확실하게 선언한다. 성전이 황폐해지고 버려질 것과(38절), 이스라엘 전체가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을 선포한다.

21~23장까지의 문맥에서 비추어 본 24:1-35의 주제; 성전 파괴

마태는 21장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면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성전으로 입성하는 과정과 입성하셔서 세 가지의 상징적인 행동을 나타내고 있다. 특별히 성전 정화 사건과 무화과나무의 저주는 이스라엘에게 임할 심판을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종교지도자들과의 논쟁에서 포도원 농부의 비유와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해서도 이스라엘이 심판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심판당할 것을 23장에 선포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23:28-23:39)와 심판을 언급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21-23장까지의 문맥을 비추어 볼 때 24:1-24:35절은 성전 파괴에 대한 언급임을 알 수 있다. 

 

성전 파괴 주제로 본 24:1-35의 구조

예루살렘 성전 파괴(24:1~35)
3.1.1. 예수님의 성전파괴에 대한 예언(1~2)
3.1.2. 성전파괴의 시작(3~14)
3.1.3. 성전파괴 시 유대인들에 대한 경고(15~28)
3.1.4. 성전파괴 직후의 모습(29~31)
3.1.5.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32~35)

 

성전 파괴 주제로 본 24장의 본문 내용

 

24장의 첫 단락은 예수님의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1-2절)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일행과 성전에서 나올 때, 제자들 중 일부가 성저의 장엄함과 성전 건축에 사용된 돌에 압도되어 주님께 설명하려 하였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 장엄한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을 예언하신다. 이 충격적인 예언을 들은 제자들은 예수님께 질문한다. 그것이 바로 3절로 시작되는 성전 파괴에 대한 내용이다(3-14절).

 

14절). 예수님의 선언에 대해 제자들은 두 가지의 질문을 하나로 묶어서 하고 있는데, 이것은 두 사건이 서로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주 밀접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마가와 누가의 평행구절에서 제자들의 질문이 동시에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성전 파괴와 마지막 때에 대한 말씀 후에 예수님은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4-5절), 전쟁과 나라 간의 분쟁과 기근(7절)과 같은 것이 마지막 때 즉 끝이 아니라 재난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신다(8절).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평행 문맥들에서 '끝'은 '세상 끝'을 '성전 파괴'로 지칭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마태복음에서도 '끝'은 반드시 '세상 끝'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정할 필요도 없고 '성전 파괴'로 지칭할 수 있다. 수시로 일어나는 사회적 혼란과 자연재해들은 '세상 끝'의 징조가 아니라 '성전 파괴'의 징조도 되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징조가 되기에는 너무 자주 일어나고 성전 파괴 와도 너무 거리가 멀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제자들이 고난을 당할 것과 그 고난 가운데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9-14절).

 

15-28절은 성전파괴 시 유대인들에 대한 경고이다. 성전 파괴 시 징조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24:15)’이다. 마태복음에서는 정확하게 멸망의 가증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누가복음(21:20-21)의 평행 구절에서는 조금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너희가 예루살렘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라고 말씀하신다. 위기의 상황이 왔을 때 좋지 않은 날씨가 도망하기 어렵게 하기 때문에 기도하라고 하신다(19-21절).

 

 

예수님은 분명히 큰 환란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래도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환난의 기간을 줄이실 것을 말씀하신다(22절). 위기의 상황에서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들이 활동할 기회를 잡을 것이며 내가 그리스도라 하면서 선택받은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다. 이들이 사람들을 미혹하는 방법은 큰 표적과 기사를 통한 방법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어떠한 기적을 보았다 할지라도 그러한 주장을 믿지 말아야 한다.


성전 파괴 직 후의 모습(29-31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많다. 보편적인 견해는 29절부터 31절까지를 종말의 때, 마직 때로 보는 견해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병행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예비적 사건, 즉 재림의 전조로 본다는 것이다.

 

카슨(Carson)은 다니엘 7:13-14절이 재림 즉 그리스도께서 지상으로 다시 오심을 언급함에 이의가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연재해나 국가 간의 분쟁 그리고 재난을 재림의 전조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24:26절에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라고 하는 말씀과 상충되기도 한다.


다음 견해는 34절에서 지칭하는 ‘이 세대’가 한 세대를 의미하는 것과 인자의 임함이 시간을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29-31절까지의 말씀이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일치하는 것이며, 이를 묵시적 언어로 이해될 때 성전 파괴에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음을 설득력있게 제시해준다. 

 

이사야의 글을 읽었던 1세기의 사람들은 이 본문이 하늘에 있는 해, 달, 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고, 이 어법은 커다란 사회적, 정치적 격변이라고 할 만한 일을 말하는,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이사야서 13장은 바벨론 제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멸망을 묘사한 것이다. 이렇게 이방 나라들을 멸망시키는데 묵시적 언어가 사용되었다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우상시되어 있는 이들의 신앙 중심인 성전을 파괴하는 묘사로 묵시적 언어가 사용된 것은 자연스러운 것 같다. 

 

그러므로 29-31절이 반드시 세상 끝에 대한 묘사일 필요는 없으며, 예루살렘 성전 파괴로 볼 수 있다. 30절에서의 '인자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초대교회로부터 이러한 일이 실제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원래 다니엘서 7:13-14절에서 인자의 오심은 인자가 땅으로 오는 것보다는 권위와 왕권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가는 것과 그 결과 인자의 권위와 왕권이 온 세상에서 인지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31절은 이스라엘 대한 인자의 권위와 심판이 인정됨으로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을 말씀한다.

 

예수님은 미래의 사건에 대한 묘사에서 화제를 전환하여서 자신의 재림이 임박함을 알고, 종말을 준비하는 제자들의 특징이 되어야 할 자세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가 한 세대 만에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시면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32~35절)고 하신다. 예수님은 무화가 나무가 철을 따라 변화하는데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워진 것을 보고 배우라는 것이다. 징조가 일어나면 징조를 보고 행동하고 생명을 보존할 것을 말씀하신다.

 

 

이상과 같이 21~23장의 논지에 비추어 넓게는 그 안에 있는 심판이라는 주제로 24:1-35절을 살펴보았다. 본문에 나타나는 심판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향한 심판으로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의미하며, 이것은 실재로 주후 70년 예루살렘 함락으로 성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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