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 (2) 하나님 나라 비유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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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마태복음 13장 (2) 하나님 나라 비유 해설

by 소북소북 2021. 3. 15.

비유 해설

씨 뿌리는 자의 비유(13:3-9, 18-23)

1세기 당시의 농사법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다양하게 제안된다. 씨 뿌리는 자가 좋은 밭에 뿌리려고 하겠지만, 돌밭도 가시덤불에도 씨가 뿌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태복음 안에서는 회실 되는 씨앗이 지나치게 많다. 헬라어 본문에 보면, 더러는, 더러는, 더러는... 이렇게 되어있다. 어떤 것들은, 어떤 것들은... 다 복수이다. 마가복음에는 하나는, 하나는, 하나는, 어떤 것들은...이라고 표현한다. 마태는 모두가 복수이다. 게다가 해설에 가서는 모두가 단수이다. 심지어 좋은 밭에 뿌린 씨앗도 단수이다.

 

마태는 의도적으로 네 밭에 같은 양의 씨앗이 뿌려짐을 의도적으로 알려준다. 11-12장에 비추어 봤을 때, 회실 되는 씨앗이 더 많음을 보여주는 의도가 있다. 마태의 비유는 회실 된 씨앗이 너무 많다. 그것을 부각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 농사법에서는 회실 되는 씨앗들이 더 많다. 하나님 나라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부터 거절한 밭은 하나이다. 나머지 셋은 싹이 났다. 반응이 있었다. 많은 무리들이 열광적으로 처음에는 반응했다. 그러나 마지막 결실이 1/4밖에 안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반응했다고 모두 다 결실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결실이다. 처음에 반응했더라도 결실치 못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20-21절> 외부적인 압박, 박해 이것이 결실치 못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집안의 식구가 곧 원수가 된다. 예수 믿음으로 말미암아 박해 받는 상황들. 열매 맺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데, 가장 큰 방해 요소는 외부의 박해이다. 가시밭은 믿음 생활하면서 점점 손해 보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그러면 사람들은 염려하고 떠나가게 된다. 남아있는 자들 중에서도 결실치 못하는 자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결실은 산상설교의 마지막 부분의 듣고 순종하는 순종의 열매이다. 삶 속에 나타나는 순종의 열매가 하나님 나라의 열매이다.

실천적 메시지 및 적용

이 비유에서 주목할 것은, 씨앗이 열매를 맺느냐 맺지 못하느냐의 문제의 핵심은 밭에 있다는 것이다. 이 비유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 복음을 전했는데 결실이 없어도 그것은 뿌리는 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걸 받는 사람에게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격려는 누가 열매를 맺을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좋은 밭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다. 너무 지나치게 예단하면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내가 너무 지나치게 간섭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때가 좀 오래 걸릴 수 있다.

 

 

가라지 비유(13:24-30, 36-43)

이 비유는 보통 ‘참 신자와 가짜 신자가 함께 공존하다가 마지막 심판 때에 구분된다’라는 식으로 많이 이해해 왔다. 그러나 이 비유는 그런 뜻이 아니다.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했는데, 악의 자녀들과 의에 자녀들이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상황 가운데, 이를 들은 많은 유대인 청중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했으니, 이 사회 가운데 철저한 전격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적어도 세례 요한이 어떤 하나님 나라를 기대했는지는 마 3장에 나온다. 3:10-12


하나님 나라는 분리하는 나라로 세례요한과 그때 당시의 청중들의 기대였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이후로도 외견상으로는 다름이 없었다. 세례자 요한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고 세상은 변화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청중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실제로 그러한 구분을 가져온다. 그러나 그것은 최종적 구분이다.

 

그러나 그것이 당장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끝에 일어날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구분의 때가 아니라 공존의 때이다. 그리고 그 구분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직접적으로 세상 끝에 일어날 일이다.

겨자씨 비유(13:31-32)

겨자씨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아주 작은 것을 비유할 때 쓰던 표현이다. 하나님 나라는 그 시작이 지극히 작다 라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누구도 눈에 띠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 나라는 시작됨을 이야기한다. 겨자는 일년생 풀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무라고 한다. 이것은 과장이다. 구약적 배경의 이해 속에서 나무는 커다란 제국을 상징하는 데 사용된다(겔 31:6).

 

하나님 나라가 작게 시작하지만, 나무가 된다. 커다란 제국이 되고, 주변의 큰 나라들이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 하에 들어오게 된다는 뜻이다. 예수님 당시 현실감 없는 말처럼 들린다. 로마 제국의 그림에서 보면 작은 시작이다.

 

그런데 그것이 한 세대도 지나가기 전에 현실로 입증되었다. 온 로마 세계에 복음이 선포되고 하나님 나라가 세력을 펼쳐가고 4세기에는 온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된다. 하나님 나라는 시작으로 끝을 판단해서는 안 되고, 처음부터 크게 하려고 해도 안 된다. 신뢰와 소망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누룩 비유(13:33)

이 주제 역시도 보잘 것 없는 작은 양의 누룩과 커져서 온 밀가루 반죽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대조한다. 또 하나의 과장이 있다. ‘서 말’은 40리터 분량이다( 20킬로 두 포대). 한 집안의 여인이 반죽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다. 누룩의 작은 양과 그것이 퍼져 나갈 전체 세상과 대조시키기 위한 과장이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여인이 누룩을 넣는 방법이다. ‘몰래 감추어 넣었다’ 복음은 이 땅에 들어올 때 떠들썩하게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이 땅에 들어오는 것이다.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고서도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셨다. 가시적이지 않다. 알지 못하게, 은밀하게, 그러는 가운데도 하나님 나라는 힘입게 성장하고 퍼져 나간다. 온 밀가루 반죽이 누룩이 되는 것처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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